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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습작

불편한 크리스마스트리

by 매띠유 2023. 11. 15.

크리스마스트리 AT COEX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도시를 깨우던 그날, 출근길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코엑스몰의 웅장한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숨을 고르며 서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바라본 트리는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처럼 환상적이었습니다. 갑자기, 마음 한편에 스며들어 온 생각은 우리 모두가 어릴 적 꿈꾸던 첫사랑의 달콤함처럼, 각자의 마음속에 크리스마스 트리에 대한 이상화된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에게 크리스마스트리는 언제나 푸르고, 32평 아파트 거실 천장을 채울 만한  아담한 크기이며, 불완전함 속에서도 화려함을 뽐내는 전구들과 장식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아래엔 가짜 선물박스들이 무심히 흩어져 있죠. 그러나 오늘 마주한 트리는 내가 기억하는 그 모습과는 완전 달랐습니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서글푼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 황홀한 나무 장식은 분명 아름다웠지만, 나에게 익숙한 크리스마스트리의 모습은 아닌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거대한 장식을 만들기 위해 흘린 이름 모를 사람들의 노력과 땀방울에 마음 깊이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그분들은 이 장식품을 마무리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행복한 감정을 심어줄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꼈을 겁니다. 나이를 먹어가며 변화를 맞이하는 유연함과, 동시에 나만의 소중한 것들을 지키려는 마음가짐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고 싶습니다. 이른 오전 이 아름다운 크리스마스트리를  조용히 바라보며, 2023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순간에  마음 가득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쳐봅니다.

COEX 크리스마스 트리
크리스마스트리 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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